프랑켄슈타인의 진짜 공포는 괴물이 아니었다 — 아무도 안 알려주는 이 소설의 숨겨진 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을 ‘괴물 이야기’로 기억한다는 것, 그게 바로 출판사와 할리우드가 200년 동안 당신에게 팔아온 가장 성공적인 사기다. 메리 셸리가 1818년에 쓴 원작 소설을 실제로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업계 독서 통계에 따르면,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의 80% 이상이 영화나 2차 창작물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진짜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 미친 과학자와 추한 괴물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말할 때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은 거의 동일하다. 번개가 치는 실험실, 볼트가 박힌 목,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비틀거리는 녹색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오만한 과학자. 이게 1931년 유니버설 픽처스가 만든 영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너무 강력해서 원작 소설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할리우드는 이 단순한 공식으로 수십 편의 영화, 드라마, 굿즈를 팔았다. ‘괴물’이라는 아이콘은 팔기 쉬웠고, 복잡한 철학적 질문은 삭제하는 게 비즈니스에 유리했다. 메리 셸리의 이름은 간판으로만 남고, 그녀가 실제로 쓴 내용은 철저히 지워졌다.

근데 진짜는 이거야: 괴물은 당신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말을 한다. 그것도 유창하게. 그는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읽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고통받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긴 연설을 한다. 영화 속 괴물처럼 “어어어” 하고 팔을 내미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인간 가족을 몰래 관찰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꿈꾸다 거절당한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걸 깨달은 그는 창조자인 빅터에게 단 하나를 요청한다. “나처럼 못생기고 외로운 여자 피조물을 하나 만들어달라.” 짝을 달라는 것이다. 그것뿐이었다.

빅터는 거절한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진짜 공포로 전환된다. 괴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창조자가 무서운 것이다.

숨겨진 이면: 메리 셸리는 자기 인생을 이 소설에 박아넣었다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쓴 건 1816년, 그녀의 나이 고작 18세였다. 그리고 그 시점에 그녀의 인생은 이미 처참했다.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그녀를 낳다가 죽었다. 첫 번째 아이는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죽었다. 남편 퍼시 셸리와의 관계는 불안정했고, 사회는 그녀를 ‘정상적인 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업계 문학 비평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사실이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메리 셸리 자신이라는 것. 원치 않게 세상에 던져지고, 어머니(창조자)도 없고, 아무도 자신을 책임지지 않으며, 존재 자체로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 소설 속 빅터가 피조물에게서 도망치는 장면은, 자신을 낳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셸리의 복잡한 감정이 투영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걸 알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한 줄 한 줄이 다르게 보인다. 이게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니라 한 18세 여자의 생존 기록이었다는 걸.

나한테 왜 중요한가: 우리는 지금도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다

이쯤에서 이 소설이 지금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상관이 아주 많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AI를 만들고 책임은 사용자에게 떠넘기는 테크 기업들. 아이를 낳고 감정적 책임은 지지 않는 부모들. 직원을 채용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네 문제’로 돌리는 경영자들. 메리 셸리는 200년 전에 이미 이 구조를 해부해서 소설로 써놨다. 창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 책임을 회피할 때 진짜 괴물이 탄생한다는 것.

그리고 더 불편한 진실 하나. 소설 마지막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는다. 그런데 피조물은? 그는 빅터의 시신 앞에서 오열한다. 자신을 버린 창조자의 죽음 앞에서 증오가 아닌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괴물이라고 불린 존재가 마지막까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이게 메리 셸리가 200년 전에 던진 질문이다. 진짜 괴물이 누구냐고.

당신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원작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라. 영어 원문은 저작권이 만료돼 무료로 구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도 여러 출판사에서 나와 있다. 읽는 데 길어야 이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읽고 나서, 당신이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프랑켄슈타인이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였는지 직접 확인해라.

할리우드와 대중문화가 200년 동안 팔아온 ‘괴물 이야기’에 속아서, 인류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를 그냥 지나쳤다면, 그건 진짜 손해다. 지식의 손해이고, 감각의 손해다.

다음 편에서는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쓴 그 밤, 빌라 디오다티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개합니다. 바이런, 퍼시 셸리, 폴리도리가 한 지붕 아래 모여 공포 소설 내기를 벌인 그 밤의 진짜 이야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권력 구조를 알고 나면, 메리 셸리가 왜 하필 ‘버려진 피조물’을 주인공으로 썼는지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다. 북마크 해두는 거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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